모닥불
위로와 소통, 사랑과 행복을 꿈꾸는
어른들이 읽는 정호승의 잠언동화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
상처입고 모난 것들을 다독이는 작은 이야기들
한결같은 순수와 정결한 자세로 인간에 대한 사랑과 맑은 꿈을 노래해온 정호승 시인의 ‘어른이 읽는 동화’ 『항아리』 『연인』 『모닥불』이 새롭게 단장되어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항아리』와 『연인』은 1998년에, 『모닥불』은 『기차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2003년에 첫 출간되었으니, 꼭 십 년 만의 일이다.
항아리, 밀물과 썰물, 섬진강, 왕벚나무, 돌멩이, 손거울, 몽당빗자루……. 말 못 하는 동식물과 사물을 빌려 상처받고 모난 것들을 가만히 다독이며 관계와 소통, 사랑과 행복에 대한 고요한 깨달음을 주는 정호승 시인의 ‘어른이 읽는 동화’는 첫 출간 이후 지금까지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오줌독으로 쓰이던 보잘것없는 항아리가 참담한 슬픔 속에서도 아름답고 소중한 그 무엇이 되기를 간절히 열망한 끝에 범종소리를 받아내는 음관 역할을 하게 된다는 「항아리」는 내가 남을 위해 소중한 존재로 쓰이기를, 내가 바라는 내가 되기를 기도하는 우리들의 모습과 겹쳐진다. 특히 『항아리』에는 「한 알의 밀」 「잉어」 「탁목조」 「소나무와 사과나무의 대화」 등 새로운 작품 네 편이 추가되어 모두 20편의 동화가 실렸다. 「한 알의 밀」은 곳간 바닥에 떨어진 밀알 한 톨이 성체로 쓰일 빵이 되어 비록 몸은 사라지지만 그가 꿈꾸던 가치 있는 삶을 실현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창덕궁 후원가의 돌에 잉어 모양이 새겨진 사연(「잉어」)과 딱따구리가 나무의 몸통을 쪼는 이유(「탁목조」)도 작가의 이야기꾼다운 상상력을 통해 관계를 통찰하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다. 척박한 삶을 견디는 어린 소나무와 풍요로운 환경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누리는 사과나무를 대비시킨 「소나무와 사과나무의 대화」는 성장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연인』은 운주사 풍경으로 매달려 사는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못한 푸른툭눈이 비어(飛魚)가 되어 세상으로 날아다니다 다시 풍?堧막關??삶과 진정한 사랑을 찾게 된다는 이야기다. 동화 속 푸른툭눈의 순례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이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이다. 사랑과 죽음의 의미, 존재의 정체성, 삶의 근원적 진실이 무엇인가에 대한 사색의 흔적이 수놓아져 있다.
한편, 소녀에게 강을 건네주던 뗏목이 소녀가 자라 마을을 떠나간 후 긴 기다림의 마음앓이 끝에 결국 겨울 강가의 모닥불로 타버리고 만다는 「모닥불」은 진정한 사랑에는 고통과 슬픔이 숨어 있음을 말해준다. 이 밖에도 『모닥불』에는 서로 함께 아픔으로써 아름다운 종소리를 내는 종과 종메 이야기(「종과 종메」), 주인의 사랑을 서로 받으려고 시샘하다 둘 다 쓸모가 없어지는 열쇠와 자물쇠 이야기(「열쇠와 자물쇠」), 남한테 준 상처가 바로 나의 상처라는 것을 깨닫는 칼 이야기(「상처」) 등 삶의 본질을 꿰뚫는 잠언과도 같은 23편의 동화가 실려 있다.
『항아리』 『연인』 『모닥불』에는 구도적이고 신비적인 색채를 통해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에 대한 탐구를 계속해온 화가 박항률의 그림이 어우러져 사색의 깊이를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