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도둑
온생명 녹색사상가 장회익의 70년 인생과 학문 이야기, 공부도둑
『삶과 온생명』이후 일반독자를 상대로 10년 만에 펴내는 장회익의 지적 자서전
녹색사상가 장회익은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인생과 학문의 이야기를 풍성하고도 섬세하게 기록하였다. 그의 상대적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이론서에 비해 이 책은 한참 공부하는 어린 학생까지도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 중심으로 수려하게 쓰여졌다. 이 책에는 집안 내력과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 어린 시절 학업을 중단했던 이야기, 청주공업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유학 시절 등과 같이 한평생 몸과 마음으로 공부한 장회익의 공부인생이 풍성하게 담겨 있다. ‘자기 안에 있는 스승을 통해 배우는 법’ ‘학문의 길에도 야생이 있다’는 장회익의 깊은 깨달음이 담긴 공부길을 만날 수 있다. 그가 전하는 인생과 학문의 이야기는 한참 공부하는 학생에서부터 학문을 업으로 삼는 이들까지 ‘공부는 왜 하는가?’ ‘그 공부가 어떠한 공부여야 하는가’와 같은 중요한 문제의식을 던져주면서, ‘참공부’의 길을 일러준다.
장회익은 스스로를 공부꾼, 공부도둑이라고 했다. 장회익이 말하는 공부도둑은 선대의 과학적 업적을 바탕으로 과학혁명의 시대를 연 근대과학자들이 스스로를 지칭한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는 난장이’와 흡사하다. 이는 그의 학문에 대한 태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기자신의 입신 출세를 위해 공부를 하는 경향이 있는데, 장회익이 말하는 ‘공부도둑’은 자신만이 아닌 세상을 위한 공부도둑이다. 자신의 자아실현을 물론이거니와 세상의 문제점과 맞서는 학문의 길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의 학문이 문명에 대한 근심과 새로운 비전으로 이행한 것은 그의 학문에 대한 태도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장회익의 공부길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과 가난과 아버지의 잦은 이사에 따른 여러 차례의 전학, 할아버지의 반대로 인한 학업의 중도포기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앎의 즐거움 하나로 공부를 향한 그의 힘들고도 성실한 노력은―자못 유쾌하기까지 한― 오늘날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깊은 감명을 준다. 그에게 닥쳤던 여러 시련들은 전화위복이 되어 자력으로 공부하는 힘을 얻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청주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스스로 미적분학을 공부하는 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장회익의 공부꾼으로서의 인생은 이러한 자기주도형 학습태도와 방법에 기반한 것이다. 이러한 자력의 공부길로 인해, 가정적으로나 한국사회적으로 열악한 학문풍토 속에서도 학문의 업을 이룰 수 있었으며, 자칫 ‘학문의 오파상’으로 전락할 위험을 넘어서서 한국의 자생적이고 독창적인 이론을 수립하는 것이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장회익의 공부길은 학문의 분과별 전문화가 학문의 분과 이기주의로 치닫고 있을 때, 그의 진리에 대한 문제의식은 통섭 이전에 이미 학제간 통합적 연구로 그를 이끌고 특히 철학을 비롯한 인??隙?그의 주요한 연구대상이 되었다. 최근에 그가 제기하는 ‘앎 중심 학문’에서 ‘삶 중심 학문’으로의 전환은 이러한 아우름 속에서 제기된 문제의식이다. 이 책은 장회익의 공부길과 학문적 업적이 척박한 한국사회의 학문풍토에 풍성한 자양분을 제공하였으며, 우리 학계가 나아갈 뚜렷한 방향을 제시했음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 책 곳곳에 나오는 상할아버지와의 가상의 대화는 책의 재미를 더해주고, 사색의 깊이를 던져준다. 또 아버지, 할아버지와 함께 평생 장회익의 사상적 삶의 준거가 되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이 쉽고 명확하게 설명되어 자연과학에 대한 이론적 설명에 관심 있는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커다란 도움을 주고 있다. 아울러 ‘온생명이론’을 비롯한 장회익 사상의 핵심이 태동한 배경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한국 지성사적으로도 매우 의미가 있는 저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