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한중일 세계사 10 : 강화도조약 Ominous
서구 열강 순방으로 ‘제국주의적 영감’을 얻은 일본,
하지만 혼란한 국내 정국 수습이 먼저라고!
근대화의 힌트를 얻고 불평등조약을 재협상하기 위해 2년 여간의 서구 열강 순방을 마친 이와쿠라 사절단. 파리 코뮌으로 혼란한 프랑스를 보며 ‘민주주의’니, ‘사상의 자유’니 하는 서구적 가치에 의구심을 품은 것도 잠시,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와 접견하며 ‘힘의 논리’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즉 열강의 틈에 끼려면 군사적·외교적·경제적 힘을 키워 국제 관계에서 통용되는 규칙을 좌우할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국주의적 영감’을 실천해볼 생각으로 부푼 가슴을 안고 일본에 돌아왔건만, 이와쿠라 사절단을 기다리는 건 혼란한 국내 정국이었다. 국내에 남은 사이고 다카모리와 그 세력이 각종 개혁을 밀어붙인 바람에 국민의 불만이 상당했던 것이다. 게다가 사이고는 대만에 표착한 류큐인들이 원주민들에게 살해당한 사건과 동래부사가 “일본은 무법지국”이라고 비난한 사건을 두고 원정에 나서야 한다며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이와쿠라 사절단의 일원이었던 오쿠보 도시미치 등이 주축이 된 삿초(사쓰마, 조슈) 유사(有司) 세력은 사이고의 해외 원정 주장을 천황의 입을 빌려 일축함으로써 권력을 탈환하고, 곧바로 국내 정국 수습에 만전을 가한다. 초기에는 사가 번의 반란을 제압하는 등 나름의 성과도 있었지만, 각종 불만을 모두 잠재우는 데는 실패한다. 결국 삿초 유사 세력도 해외 원정으로 일본의 힘을 과시해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하는데…. 이를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조선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