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방랑자
『강철군화』『야성이 부르는 소리』로 전 세계 독자들에게
여전히 매혹적인 작가, 잭 런던의 마지막 장편소설! 국내 초역!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미국 문학의 중심에 서서 자신의 작품만큼 열정적인 삶을 살다 간 잭 런던(1876~1916). 그는 작가이기 이전에 열정적인 ‘모험가’였다. 신문배달원, 통조림공장 노동자, 굴 해적꾼, 물개잡이 선원, 세탁소 점원, 부랑아, 노다지꾼, 기자 등으로 다채로운 삶을 살았으며, 작가로 일한 16년 동안 노동자가 기계를 돌리듯 뜨겁게 글을 써내려갔다. 그의 열정적인 삶은 19편의 장편소설을 비롯해, 500여 편의 논픽션, 200여 편의 단편소설로 남았다.
런던의 작품은 기복이 심한 편이었지만, 누구나 인정하는 뛰어난 업적은 그가 자신의 경험 세계를 형상화했던 점이었다. 그는 발로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한 세계를 문학적 이야기로 승화시켰다. 이를테면 런던에게 작가로서의 명성을 가져다준 『야성이 부르는 소리』는 골드러시가 일어난 알래스카 지역에서 지낸 경험을 살려 쓴 것이며, 『밑바닥 사람들』은 런던 빈민가를 직접 체험하고 기록한 르포다. 1915년에 발표된 잭 런던의 마지막 장편소설인 『별 방랑자』 역시 그러한 연장선상에 있다.
『별 방랑자』는 샌 쿠엔틴 교도소에 수감되었던 에드 모렐이라는 실존인물의 경험에 영감을 받아 쓴 작품이다. 잭 런던은 에드 모렐에게 들은 비인간적인 교도소 생활을 문학적 상상력을 가미하여 소설로 완성하였다. 구속복, 캔버스 같은 질긴 천으로 만든 옷으로 난폭한 죄수나 정신병자에게 입혀 몸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드는 도구다. 이 작품은 당시 샌 쿠엔틴 교도소에서 실제로 이루어진 고문 방식을 소재로 하여, 무자비하고 야만적인 교도소 시스템과 형벌제도를 고발하고 있다.
특히 잭 런던은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특파원으로 일본과 조선에 방문했는데, 이런 경험은 『별 방랑자』에 생생하게 담겨 있다. 굴 해적꾼ㆍ물개잡이 배의 선원 등 뱃사람으로 지냈던 경험과 미국 전역과 세계 도처를 탐험한 체험 등 다채롭고 드라마틱한 작가의 삶이 작품 전체에 녹아 있다.
감옥 담장 너머 자유인보다 더 자유로웠던 한 사형수 이야기
세상 가장 밑바닥에서 인간의 의지는 가장 위대하게 피어난다!
전직 대학교수인 대럴 스탠딩은 동료를 살인한 죄로 샌 쿠엔틴 교도소에 수감된다. 그러나 다이너마이트를 교도소에 반입했다는 모함을 받아 간수들로부터 온몸을 옥죄는 구속복을 입게 된다. 끔찍한 고문에 동료 죄수들은 하나둘씩 무너지지만, 그는 자기최면과 의지만으로 고문을 견디는 방법을 깨우치고는 우주와 별 사이를 넘나들며 수많은 전생을 경험한다. 그는 무의식의 세계에서 중세 프랑스의 백작으로, 조선에 표류한 영국인으로, 마운틴메도스 학살의 피해자로, 예수가 못 박히는 예루살렘을 지켜본 북유럽인으로, 말을 처음 길들인 선사시대 원시인 등으로 살아온 자신의 과거를 보게 된다. ……
대럴 스탠딩은 전생의 시간여행을 통해 자신이 수 세기에 거쳐 수많은 자아로 살아왔음을 깨닫는다. 한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의 영혼이 다른 육체의 옷을 입고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 윤회사상이다. 한편 이러한 윤회사상은 소설 속에서 다윈의 진화론과 결을 같이 한다. 런던은 까마득히 먼 원시시대부터 20세기 현대문명까지 한 사람의 인간에게는 우주의 끝없는 시간이 기록되어 있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한때 물고기였고, 새였고, 원시인이었다고. 마치 다윈의 『종의 기원』을 서정적인 시로 새롭게 쓰듯이, 잭 런던은 사람이 진화해온 과정과 인류문명이 발전해온 과정을 넌지시 비춰 보여준다.
그러나 런던은 여기에서 이야기를 멈추지 않고, 과연 문명이 발달할수록 도덕성도 함께 함께 진화하는가, 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그는 사형수 대럴 스탠딩의 목소리를 빌어, 전생 여행을 통해 수억 년의 시간을 방랑했으나 지금과 같은 잔혹한 시대를 본 적이 없었노라 이야기한다. 문명의 껍데기는 인류가 물질적ㆍ사회적으로 발전을 이룬 것처럼 보이게 했지만, 우리 안의 야만성은 오히려 무지막지한 형벌과 사형제도에 합법이라는 이름을 달아주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정신의 승리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극한 상황을 극복하고 이겨내는 초월적인 정신력. 잭 런던은 특유의 강렬하고 역동적인 문체와 스토리로 인간성의 고결함을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잭 런던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이 소설의 주인공 역시 니체의 초인상을 재현하고 있지만, 대럴 스탠딩은 에드 모렐이라는 실존인물의 경험에서 탄생하였다. 에드 모렐은 샌 쿠엔틴 교도소 독방에서 5년간 간수들에게 잔인한 고문을 겪으면서도 폭력에 꺾이지 않은 인물이었다.
특별히 한국 독자에게 『별 방랑자』는 더욱 반갑게 다가갈 것이다. 난파되어 조선에 머물게 된 영국인의 에피소드가 비중 있게 그려지기 때문이다. 잭 런던은 러일전쟁 특파원으로 일본과 조선에 방문했으며, 조선에서는 YMCA의 초청으로 『야성이 부르는 소리』 낭독회를 가지기도 했다. 『별 방랑자』에 등장하는 한국 에피소드는 애덤 스트랭이라는 영국인이 현실의 고통을 조선 여인과의 사랑으로 이겨내는 내용이다. 에피소드 곳곳에 조선의 풍속과 한시, 실존 역사인물이 쏟아져 나와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백인우월주의와 인종주의적 편견이 엿보이지만, 이는 당시 서양인들이 조선인(동양인)을 보는 보편적 인식이었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데는 이렇듯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서구문명의 단면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생학적 인종주의와 더불어, 진화론과 사회진화론, 꿈과 (집단)무의식도 그 중 하나다.
이 작품은 삶과 죽음, 육체와 정신, 의식과 무의식, 야만과 문명, 남성과 여성, 동양과 서양 등 가볍지 않은 통찰거리를 선사해준다. 환상적인 과학공상소설로서의 매력도 다분하다. 동시에 우리는 이 책을 열정적인 모험작가가 남긴 반(半)자전 소설로도 읽을 수 있다. 마흔이라는 길지 않은 삶을 사는 동안 잭 런던이 한결같이 간직한 것이 있었다. 바로 삶에 대한 열정이었다. 이 소설은 작가가 한평생 지닌 열정의 삶을 또렷이 응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