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짧은 생애 하권

짧은 생애 하권

저자
편집부
출판사
문예마당
출판일
2006-06-14
등록일
2006-06-14
파일포맷
EPUB
파일크기
414 Bytes
공급사
북토피아
지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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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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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유리창엔 빗물이 구르고 하염없이 밤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이따금 바람이 빗줄기를 후려치면 창틀이 덜컹거리곤 합니다. 덩달아 내 마음도 흔들리지요. 서늘한 기운이 팔 등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괜스레 어깨가 오슬오슬 떨리는군요. 눅눅한 방 안이 을씨년스러움으로 가득 찬 듯 싶습니다. 차마 나를 에워싸고 있는 벽을 돌아볼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차라리 비바람에 부대끼고 있는 창 밖에 나를 맡기고 싶습니다. 냉랭한 벽보다는 서로 할퀴고 물어뜯고 있는 바깥 세상에 더욱 끌리니 웬일인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그런 경험이 있는지요. 부질없는 나만의 상상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나는 낮선 풍경과 마주치기라도 하면 그 안에 나를 머물게 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것입니다. 한겨울에 기차를 타고 가다 저 멀리 펼쳐진 들판을 보게되면 나는 바로 거기에 나를 홀로 걸어가게 만듭니다. 차창 밖에는 칼바람이 씽씽 불고 헐벗은 들판은 얼어붙었는데 말이지요. 언젠가 한밤중에 산등성이와 마주선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도 컴컴한 산 속에 홀로 팽개쳐진 나를 그려보곤 했습니다. 막막한 지평선을 홀로 걸어간다든지, 까마득하기 만한 산을 걷고 있는 나를 상상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세요? 지금 저 안에 내가 서 있다면 얼마나 외로울까 하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집니다. 답을 할 새도 없이 잊어버리려고 진저리를 치곤 하지요. 낯선 풍경을 대하면 왜 그런 쓸데없는 상상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고약한 버릇이지요.

지금 그런 상상에 사로잡히려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뒤를 돌아볼 수가 없어요. 벽 속에 갇히기보다는 빗속을 헤매며 마구 뛰어다니는 게 낫지 싶습니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할 수 없다면 얼마나 끔찍하겠습니까. 비록 밤이지만 빗속에는 다툼이 있으니 다행입니다. 비는 속삭이다가도 바람이 꼬집으면 앙탈하며 울부짖으니 훨씬 살아 있다는 절절함을 느낄 수 있지요.

빗방울이 유리창에 구르고 빗물이 이내 뒤를 따릅니다.

빗물을 눈으로 좇다 빗줄기에 귀를 기울이니 갖가지 상념이 어지럽게 끓어오릅니다. 우거진 숲에 홀로 떨어진 듯싶습니다. 발길에 채는 나무 줄기를 허겁지겁 걷어내다 보니 어느덧 사람이 다닌 듯한 길이 있습니다. 오솔길에 발을 들여놓으니 마음이 놓입니다. 그제야 빗줄기는 소리도 없이 유리창에 미끄러지고 있습니다.

팔 등을 문질러봅니다. 어깨의 떨림은 비 때문만은 아니지 싶습니다. 빗물이 흥건한 유리창에 어머니의 얼굴이 뿌옇게 흐려지고 있습니다.


- 본문 중에서미대에 다니는 운동권 여학생 서인덕의 고뇌하는 삶을 그린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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